최익현
위정척사파 유생. 흥선대원군의 하야를 이끌어 낸 상소, 개항 반대 5불가소를 올렸고, 을사늑약 뒤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쓰시마에서 죽었다
이항로의 제자로 위정척사 사상을 이었다. 1873년 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 등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876년에는 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 엎드려 일본도 서양 오랑캐와 같다는 왜양일체론으로 개항에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을미개혁 때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을 거부했다. 1906년 임병찬과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같은 동포인 관군과는 싸울 수 없다며 해산하고 붙잡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