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608년 (진평왕 30년)
원광의 걸사표
고구려의 잦은 침략에 시달린 진평왕이 원광에게 수에 군사를 청하는 글(걸사표)을 짓게 했다.
진평왕 때 고구려가 신라의 북쪽 변경을 자주 쳐들어오자, 왕은 608년 수의 군사를 빌려 고구려를 치려고 원광에게 글을 짓게 했다. 원광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남을 멸하는 것은 승려의 할 일이 아니지만, 빈도가 대왕의 땅에 살고 대왕의 물과 풀을 먹으니 어찌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고 걸사표를 지었다.
611년 신라는 수에 사신을 보내 표를 바치고 군사를 청했고, 수 양제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듬해 수 양제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에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에게 살수에서 크게 졌다. 걸사표는 불교가 나라를 지키는 호국 불교의 성격을 보여 주는 사례로, 뒤에 김춘추가 당과 손잡는 나당 동맹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외교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