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605년 – 610년
수 양제의 대운하 건설
다른 이름: 대운하
수 양제가 605–610년 황허와 화이허·창장, 그리고 북쪽 탁군(오늘 베이징)까지 잇는 대운하를 완성해 강남의 경제와 화북의 정치 중심을 이었다.

Groverlynn · CC BY-SA 4.0 · 원본
수 문제 때 장안과 황허를 잇는 광통거를 판 데 이어, 양제는 605년 황허와 화이허를 잇는 통제거, 608년 황허에서 북쪽 탁군까지 가는 영제거, 610년 창장 남쪽 항저우까지 가는 강남하를 열었다. 낙양을 중심으로 남북 2,000km가 넘는 물길이 이어져, 개발된 강남의 쌀과 물자가 화북의 수도로 올라오게 되었다.
대운하는 뒤의 당·송·원·명·청까지 중국 경제의 동맥이 되었으나, 백만 명이 넘는 백성을 동원한 공사와 낙양 건설, 영제거로 군수품을 나른 세 차례의 고구려 원정(612–614)은 백성을 지치게 했다. 살수대첩의 참패 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양제는 618년 강도(양저우)에서 부하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