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187년 10월 2일
살라딘의 예루살렘 탈환
하틴 전투 석 달 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포위해 항복을 받았다. 1099년과 달리 몸값을 받고 주민을 내보냈다.

Loyset Liédet · Public domain · 원본
하틴 전투로 왕국의 주력군이 사라지자 살라딘은 아크레·야파 등 해안 도시를 차례로 손에 넣은 뒤 1187년 9월 20일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성안에는 싸울 기사가 거의 없었고, 귀족 이벨린의 발리앙이 피난민과 시민을 무장시켜 성벽을 지켰다.
성벽 일부가 무너지자 발리앙은 성안의 성소를 부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버티며 협상했다. 살라딘은 남자 10디나르, 여자 5디나르, 아이 1디나르의 몸값을 받고 주민을 내보내기로 했고, 10월 2일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몸값을 내지 못한 많은 사람은 노예가 되었지만, 살라딘과 동생 알아딜이 일부를 그냥 풀어 주기도 했다.
1099년 십자군의 학살과 대비되는 이 처분으로 살라딘은 유럽에서도 너그러운 기사의 본보기로 이름을 남겼다. 바위의 돔과 알아크사 모스크는 다시 이슬람 성소가 되었고, 예루살렘을 잃었다는 소식은 제3차 십자군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