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147년 – 1149년

제2차 십자군

에데사 함락 뒤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독일 왕 콘라트 3세가 원정했으나, 다마스쿠스 포위에 실패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다마스쿠스 포위(1148) — 13세기 프랑스 사본 삽화
다마스쿠스 포위(1148) — 13세기 프랑스 사본 삽화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부탁으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설교에 나서자 처음으로 왕들이 직접 십자군을 이끌었다. 두 군대는 따로 소아시아를 건너다 셀주크 튀르크에게 크게 잃었다.

남은 병력은 1148년 7월 예루살렘 왕국과 함께 다마스쿠스를 포위했으나 나흘 만에 물러났다. 실패는 서유럽의 열기를 식혔고, 장기의 아들 누르 앗딘이 시리아를 하나로 묶는 길을 열었다.

지도에서 보기

114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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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 침공국
신성 로마 제국 · 침공국
예루살렘 왕국 · 연합군
장기 왕조 · 교전국
관련 장소
다마스쿠스

관련 인물

  • 루이 7세1120년 – 1180년

    지휘관 · 프랑스 왕(재위 1137–1180). 왕비 알리에노르와 함께 제2차 십자군에 나섰으나 다마스쿠스 포위에 실패했다

  • 콘라트 3세1093년 – 1152년

    지휘관 · 독일 왕(재위 1138–1152). 제2차 십자군을 이끌었으나 아나톨리아에서 셀주크군에 크게 졌다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년 – 1153년

    관련자 · 시토회 수도원장. 교황의 부탁으로 제2차 십자군을 설교해 프랑스와 독일의 왕을 원정에 나서게 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144년 고딕 양식 성당의 건축

이 사건이 든 테마

  • 십자군 전쟁1095년 – 1291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