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 운동
다른 이름: 백화 운동, 문학 혁명
천두슈의 『신청년』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민주와 과학"을 내걸고 유교 윤리를 비판하며, 말과 글을 일치시키는 백화 문학을 일으켰다.

Fayhoo · CC BY-SA 3.0 · 원본
신해혁명 뒤에도 군벌 정치와 위안스카이의 제제 운동이 이어지자, 지식인들은 정치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상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보았다. 1915년 9월 천두슈가 상하이에서 『청년잡지』(이듬해 『신청년』)를 창간해 "민주(德先生)와 과학(賽先生)"을 내세우고, 삼강오륜 같은 유교 윤리와 가족 제도를 낡은 것으로 비판했다.
1917년 차이위안페이가 총장이 된 베이징 대학에 천두슈·후스·리다자오 등이 모이며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후스는 문어 대신 구어로 쓰자는 문학 개량론을 내놓았고, 루쉰은 1918년 첫 백화 소설 「광인일기」로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를 고발했으며 뒤에 『아Q정전』을 썼다.
러시아 혁명 뒤 리다자오와 천두슈는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해, 신문화 운동은 5·4 운동과 중국 공산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백화문이 학교와 신문의 글로 자리 잡은 것도 이 운동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