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1개조 요구
다른 이름: 21개조 요구, 대중국 21개조 요구
제1차 세계 대전 중 산둥의 독일 조차지를 빼앗은 일본이 위안스카이 정부에 산둥·남만주의 이권 등 21개 조항을 요구해 대부분을 받아들이게 했다.

작자 미상 · CC BY-SA 4.0 · 원본
1914년 8월 일본은 영일 동맹을 내세워 독일에 선전 포고하고 11월 칭다오와 산둥의 독일 이권을 차지했다. 유럽 열강이 전쟁에 묶인 틈을 타 1915년 1월 오쿠마 내각은 위안스카이에게 산둥의 독일 권익 계승, 뤼순·다롄과 남만주 철도 조차 기한 연장, 한예핑 공사의 공동 경영 등을 요구했다. 중국 정부에 일본인 고문을 두게 하는 제5호 조항까지 들어 있었다.
협상이 늘어지자 일본은 5월 7일 최후통첩을 보냈고, 위안스카이 정부는 제5호를 뺀 대부분을 5월 9일 받아들였다. 중국 사람들은 이날을 "국치일"로 부르며 일본 상품 배척 운동을 벌였다.
21개조 요구는 중국의 반일 민족주의를 키운 출발점이 되었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가 산둥 이권을 일본에 넘기기로 하자 이 불만이 5·4 운동으로 터졌고, 산둥은 1922년 워싱턴 회의에서야 중국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