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313년

미천왕, 낙랑군을 몰아내다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을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고 대동강 유역을 차지했다.

낙랑 토성 발굴 현장 — 평양 대동강 남쪽의 낙랑군 치소 터 (1937년)
낙랑 토성 발굴 현장 — 평양 대동강 남쪽의 낙랑군 치소 터 (1937년)

朝鮮古蹟研究会 · Public domain · 원본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둔 4군 가운데 하나로, 평양 대동강 남쪽의 토성을 중심으로 400년 넘게 이어졌다. 3세기 초에는 요동의 공손씨가 그 남쪽 황해도 일대에 대방군을 두었다.

미천왕(을불)은 봉상왕의 박해를 피해 소금 장수로 숨어 살다가 창조리 등의 추대로 즉위했다. 중국이 5호 16국으로 갈라진 틈을 타 311년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을 차지해 낙랑과 중국의 길을 끊었고, 313년 낙랑군, 314년 대방군을 몰아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중국 군현이 사라지고 고구려는 대동강 유역의 넓은 평야를 얻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황해도에서 국경을 맞대면서 두 나라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미천왕이 죽은 뒤 342년에는 전연의 모용황이 쳐들어와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가져가기도 했다.

지도에서 보기

31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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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구려 · 정복국 — 미천왕
낙랑군 · 멸망

관련 인물

  • 미천왕331년

    군주 · 고구려 제15대 왕. 서안평을 차지하고 낙랑군을 몰아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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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김해 대성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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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년 근초고왕의 전성기

이 사건이 든 테마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