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682년 6월(음력)

국학 설치

신문왕이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세웠다. 유교 정치 이념을 익힌 관리를 길러 왕권을 뒷받침하려는 것이었다.

경주 향교 — 신라 국학이 있던 자리로 전하는 곳 (건물은 조선 때)
경주 향교 — 신라 국학이 있던 자리로 전하는 곳 (건물은 조선 때)

Alain Seguin · CC BY-SA 3.0 · 원본

국학에서는 15세에서 30세의 학생에게 논어와 효경을 필수로 가르치고 9년 동안 공부하게 했다. 경덕왕 때 태학감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 무렵 6두품 유학자들이 왕의 정치를 도왔다. 강수는 외교 문서를 잘 지었고, 원효의 아들 설총은 이두를 정리해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했으며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바쳐 왕이 도덕을 지킬 것을 일깨웠다.

지도에서 보기

682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신문왕
관련 장소
서라벌 (경주)

관련 인물

  • 신문왕692년

    군주 · 문무왕의 아들, 통일 신라의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국학·9주 5소경·관료전으로 왕권을 굳혔다

  • 설총

    관련자 · 원효의 아들. 이두를 정리해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했고,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 강수

    관련자 · 신라의 6두품 유학자. 외교 문서를 잘 지어 무열왕·문무왕의 외교를 도왔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685년 9주 5소경 정비

이 사건이 든 테마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