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수
신라의 6두품 유학자. 외교 문서를 잘 지어 무열왕·문무왕의 외교를 도왔다
중원경(충주) 출신으로, 머리 뒤에 뼈가 튀어나와 "강수"라 불렸다고 전한다. 무열왕이 당 사신이 가져온 어려운 국서를 그에게 풀게 하면서 이름이 났다. 문무왕은 삼국 통일에 그가 지은 외교 문서의 공이 컸다고 평했다. 불교를 세속의 가르침이라 하여 유학을 택했고, 설총·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대표 유학자로 꼽힌다. 6두품 유학자들이 왕의 정치를 돕던 신문왕 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