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682년

감은사 완성과 만파식적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이 짓기 시작한 감은사를 완성했다. 이 무렵 동해의 용에게서 얻었다는 피리 만파식적 설화가 전한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682년 신문왕이 완성한 감은사 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682년 신문왕이 완성한 감은사 터, 경주

Junho Jung · CC BY 3.0 · 원본

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왜적(왜의 침입)을 막겠다며 동해에 장사 지내 달라고 했고, 그 바위가 대왕암(문무대왕릉)이라고 전한다. 신문왕은 그 앞에 감은사를 완성하고, 금당 밑에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게 빈 공간을 두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은 바다의 작은 산에서 얻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왔다 하여 만파식적이라 불렀다. 통일 뒤 강해진 왕권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지도에서 보기

68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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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신문왕
관련 장소
경주 감은사지, 경주 문무대왕릉 (대왕암)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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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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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년 김흠돌의 난
이후 사건
682년 국학 설치

이 사건이 든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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