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681년 8월 8일(음력)
김흠돌의 난
신문왕이 즉위한 해에 장인 김흠돌이 반란을 꾀하다 처형되었다. 신문왕은 이를 계기로 진골 귀족을 숙청하고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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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돌은 흥원·진공 등과 반란을 꾀하다 붙잡혀 죽었고, 이를 알고도 알리지 않은 병부령 김군관도 처형되었다. 김흠돌의 딸인 왕비도 궁에서 쫓겨났다. 삼국 통일 전쟁에서 공을 세운 진골 귀족 세력이 크게 꺾였다.
이 뒤 신라 중대에는 귀족 회의를 이끄는 상대등의 힘이 약해지고, 왕의 명령을 받드는 집사부의 장관 시중의 권한이 커졌다. 신문왕은 이어 국학 설치, 9주 5소경 정비,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로 전제 왕권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