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681년 8월 8일(음력)

김흠돌의 난

신문왕이 즉위한 해에 장인 김흠돌이 반란을 꾀하다 처형되었다. 신문왕은 이를 계기로 진골 귀족을 숙청하고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신문왕릉 —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왕권을 굳힌 신문왕의 무덤, 경주
신문왕릉 —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왕권을 굳힌 신문왕의 무덤, 경주

Ronnie Dayo · CC BY-SA 4.0 · 원본

김흠돌은 흥원·진공 등과 반란을 꾀하다 붙잡혀 죽었고, 이를 알고도 알리지 않은 병부령 김군관도 처형되었다. 김흠돌의 딸인 왕비도 궁에서 쫓겨났다. 삼국 통일 전쟁에서 공을 세운 진골 귀족 세력이 크게 꺾였다.

이 뒤 신라 중대에는 귀족 회의를 이끄는 상대등의 힘이 약해지고, 왕의 명령을 받드는 집사부의 장관 시중의 권한이 커졌다. 신문왕은 이어 국학 설치, 9주 5소경 정비,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로 전제 왕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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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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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신문왕
관련 장소
서라벌 (경주)

관련 인물

  • 신문왕692년

    군주 · 문무왕의 아들, 통일 신라의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국학·9주 5소경·관료전으로 왕권을 굳혔다

  • 김흠돌681년

    주도자 · 신문왕의 장인. 신문왕이 즉위한 해에 반란을 꾀하다 죽임을 당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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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 의상의 부석사 창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앙 통치 기구의 변천250년 – 1899년

    제가 회의·화백 회의에서 의정부·비변사, 군국기무처까지 — 귀족의 합의와 왕권 사이에서 중앙 기구가 어떻게 바뀌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