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 (공공누리 제1유형) · CC BY-SA 4.0 · 원본
김종서
두만강 유역에 6진을 개척한 장수이자 재상.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죽었다
세종의 명으로 함길도에 가서 여진을 몰아내고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해, 4군과 함께 오늘날과 비슷한 국경선을 만들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을 이끌었다.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 좌의정이 되었으나, 1453년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파에게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다.

문화재청 (공공누리 제1유형) · CC BY-SA 4.0 · 원본
두만강 유역에 6진을 개척한 장수이자 재상.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죽었다
세종의 명으로 함길도에 가서 여진을 몰아내고 두만강 하류에 6진을 설치해, 4군과 함께 오늘날과 비슷한 국경선을 만들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을 이끌었다.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 좌의정이 되었으나, 1453년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파에게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다.
최윤덕이 압록강 상류에 4군을, 김종서가 두만강 하류에 6진을 두어 오늘날 국경선의 바탕을 만들었다.
문종 때 정인지·김종서 등이 고려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고려사를 완성했다. 이듬해 편년체의 고려사절요가 나왔다.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인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2년 뒤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다.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