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안 시대와 정풍 운동
다른 이름: 옌안 정풍 운동, 연안 정풍, 옌안 문예 좌담회, 제7차 당 대회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 중앙은 1937년 1월부터 10년 동안 산시성 북부의 옌안을 수도로 삼았다. 이곳에서 정풍 운동(1942–1945)으로 당을 마오쩌둥 중심으로 묶었고, 1945년 제7차 당 대회는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지도 사상으로 올렸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대장정 뒤 산시성 북부에 자리 잡은 공산당 중앙은 1937년 1월 옌안으로 옮겨 1947년까지 머물렀다. 중일 전쟁 동안 옌안은 산간닝 변구 정부의 수도이자 팔로군·신사군이 넓힌 화북·화중 근거지의 중심이었고, 많은 청년 지식인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에드거 스노 같은 외국 기자와 1944년 미군 관찰단(딕시 사절단)도 옌안을 찾았다.
마오쩌둥은 1942년 2월부터 주관주의·종파주의·형식주의를 바로잡는다는 정풍 운동을 일으켜 모스크바 유학파의 영향력을 줄였고, 5월 "옌안 문예 좌담회 강화"로 문학과 예술이 노동자·농민·병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정했다. 1943년 캉성이 주도한 "구출 운동"에서는 많은 당원이 간첩으로 몰려 강요된 자백을 했고, 마오쩌둥은 뒤에 이를 잘못으로 인정했다. 마오쩌둥은 1943년 정치국 주석이 되었고, 1945년 4–6월의 제7차 당 대회는 마오쩌둥 사상을 당헌에 넣었다.
내전이 시작된 뒤 1947년 3월 후쭝난의 국민당군이 옌안을 차지했으나 공산당 중앙은 미리 빠져나갔고, 1948년 4월 옌안을 되찾았다. 오늘의 중국에서 옌안의 보탑과 동굴 집(야오둥)은 혁명의 상징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