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사건
다른 이름: 서안 사변, 시안 사변
1936년 12월 12일 장쉐량과 양후청이 시안에 온 장제스를 붙잡아 내전을 멈추고 함께 일본에 맞서라고 요구했다. 공산당의 저우언라이가 중재해 장제스가 풀려났고, 이는 제2차 국공 합작의 계기가 되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만주를 잃고 산시성으로 옮겨 온 장쉐량의 동북군은 공산당 토벌에 투입되었으나, 고향을 되찾고 싶은 병사들 사이에서는 "중국인은 중국인과 싸우지 않는다"는 항일 여론이 높았다. 1935년 베이핑 학생들의 12·9 운동 등 항일 구국 운동도 거세졌다. 장쉐량은 공산당과 몰래 연락하며 장제스에게 토벌 중지를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다.
독전하러 온 장제스가 린퉁의 화청지에 머물자, 12월 12일 새벽 장쉐량과 서북군의 양후청은 그를 붙잡아 내전 중지와 일치 항일 등을 요구했다. 공산당의 저우언라이와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등이 협상에 나섰고, 장제스는 내전 중지에 사실상 동의한 뒤 25일 풀려났다. 장쉐량은 스스로 장제스를 따라 난징으로 갔다가 군법 재판을 받고 그 뒤 50년 넘게 연금되었다.
시안 사건으로 국민당의 공산당 토벌이 멈추었고, 이듬해 중일 전쟁이 터지자 제2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