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기원전 494 – 287년

신분 투쟁 — 호민관과 12표법

다른 이름: 평민과 귀족의 신분 투쟁

전쟁에 나서는 평민들이 귀족에 맞서 권리를 요구해 호민관을 얻고 성문법인 12표법을 만들게 했다.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법으로 평민회의 결의가 법이 되었다.

12표법을 만드는 10인 위원회 — 로마의 법을 처음으로 글로 적어 공개했다. 프랑스 판화, 1799년 무렵
12표법을 만드는 10인 위원회 — 로마의 법을 처음으로 글로 적어 공개했다. 프랑스 판화, 1799년 무렵

Drawing by Silvestre David Mirys (1742-1810). Engraved by Claude-Nicolas Malapeau (1755-1803). · Public domain · 원본

로마가 이웃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중장 보병으로 싸우는 평민(플레브스)의 몫이 커졌다. 평민들은 기원전 494년 성산(聖山)으로 물러나 군 복무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귀족에 맞섰고, 그 결과 평민회와, 평민을 보호하고 정무관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호민관을 얻었다.

기원전 450년 무렵에는 귀족이 멋대로 해석하던 관습법을 글로 적어 광장에 내건 12표법이 만들어졌다. 로마 최초의 성문법으로 뒤의 로마법의 바탕이 되었다.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은 집정관 한 명을 평민에서 뽑을 수 있게 하고 공유지 점유를 제한했다.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법은 평민회의 결의가 원로원의 승인 없이 모든 로마인에게 법이 되게 했다.

이로써 법으로는 귀족과 평민이 평등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유한 평민이 귀족과 어울린 새 지배층(노빌레스)이 원로원을 이끌었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494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로마 공화정
관련 장소
로마

앞뒤 사건

이전 사건
기원전 509년 로마 공화정 수립
이후 사건
기원전 264년 포에니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그리스와 로마기원전 2000년 – 476년

    에게 문명에서 서로마 제국 멸망까지 — 폴리스의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제정이 이룬 서양 고전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