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전쟁
다른 이름: 루거우차오 사건, 노구교 사건, 7·7 사변, 항일 전쟁, 제2차 중일 전쟁
1937년 7월 7일 베이핑 근처 루거우차오에서 일어난 충돌을 계기로 일본이 중국을 전면 침략했다. 중국은 국공 합작으로 8년 동안 항전했고, 전쟁은 1941년부터 태평양 전쟁과 하나가 되어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다.

Unknown photographer, Ministry of the Navy · Public domain · 원본
1937년 7월 7일 밤 루거우차오 근처에서 야간 훈련을 하던 일본군이 총소리와 병사의 실종을 이유로 완핑성의 중국군과 충돌했다(루거우차오 사건).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대군을 보냈고, 일본군은 베이핑과 톈진을 차지한 뒤 8월 상하이를 공격했다. 3개월에 걸친 상하이 전투 끝에 12월 수도 난징이 함락되었다.
국민 정부는 우한을 거쳐 충칭으로 옮겨 "땅으로 시간을 바꾸는" 지구전을 폈다. 일본은 1938년 "국민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동아 신질서"를 내걸었으며, 국가 총동원법으로 일본과 식민지를 전시 체제로 묶었다. 일본군은 주요 도시와 철도를 차지했으나 넓은 농촌은 장악하지 못했고, 충칭 폭격과 화북의 소탕 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1940년에는 왕징웨이를 앞세워 난징에 친일 정권을 세웠다.
전쟁이 길어지자 일본은 자원을 찾아 동남아시아로 나아가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중국 측 사상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000만 명이 넘는다는 추정이 많고, 중국 정부는 3,500만 명으로 본다. 한국의 독립운동 세력도 조선 의용대와 한국광복군으로 중국과 함께 싸웠고, 한반도는 병참 기지가 되어 물자와 사람을 수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