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23년 1월 11일 – 1925년 8월

루르 점령과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다른 이름: 루르 점령, 바이마르 초인플레이션, 도스안, 뮌헨 폭동

독일이 배상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프랑스와 벨기에가 공업 지대인 루르를 점령했다. 독일 정부가 소극적 저항을 벌이며 돈을 찍어 내자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했다.

에센에 들어서는 프랑스군 — 1923년 루르 점령
에센에 들어서는 프랑스군 — 1923년 루르 점령

Bain News Service, publisher · Public domain · 원본

1921년 연합국은 독일의 배상금을 1,320억 금마르크로 정했다. 독일이 석탄·목재 인도를 미루자 프랑스와 벨기에는 1923년 1월 11일 군대를 보내 독일 석탄·철강 생산의 중심인 루르 지방을 차지했다. 독일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일손을 놓는 소극적 저항을 호소하고 그 임금을 화폐를 찍어 대었다.

이미 오르던 물가가 걷잡을 수 없게 되어 11월에는 1달러가 4조 2천억 마르크에 이르렀다. 저축과 연금으로 살던 중간층이 무너졌고 공화국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11월 8~9일 히틀러는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썼다.

총리 슈트레제만은 9월 소극적 저항을 끝내고 11월 새 화폐 렌텐마르크로 물가를 잡았다. 1924년 미국이 내놓은 도스안으로 배상금을 나누어 갚고 미국 자본을 빌려 오면서 독일 경제는 살아났고, 점령군은 1925년까지 물러났다.

지도에서 보기

192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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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 점령군
벨기에 · 점령군
독일
관련 장소
뮌헨

관련 인물

  • 구스타프 슈트레제만1878년 – 1929년

    관련자 ·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1923)·외무 장관(1923–1929).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로카르노 조약으로 독일을 국제 사회에 되돌렸다

  • 아돌프 히틀러1889년 – 1945년

    관련자 · 나치당 지도자이자 독일의 총통(1934–1945).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 베를린 함락 직전 자살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9년 범아프리카 회의
이후 사건
1925년 로카르노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공황과 전체주의1919년 – 1939년

    워싱턴 회의에서 폴란드 침공까지 — 국제 협조의 시대가 대공황으로 무너지고, 파시즘·나치즘·스탈린 체제가 일어나 다시 세계 대전으로 치달은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