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문왕의 체제 정비
문왕이 당과 친선을 맺고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갖추었다. 대흥이라는 연호를 쓰고 신라도를 열어 신라와 교류했다.

Senkaku Islands · CC BY-SA 4.0 · 원본
문왕은 대흥·보력이라는 연호를 썼고, 정효 공주 묘지에서는 문왕을 "황상"이라 불렀다. 당은 762년 발해의 지위를 "발해 군왕"에서 "발해 국왕"으로 높였다.
중앙에는 정당성·선조성·중대성의 3성과 충·인·의·지·예·신부의 6부를 두었다. 당의 제도를 본떴지만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고, 6부를 좌사정·우사정 아래 둘로 나누어 맡기며 유교 덕목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발해만의 특징이다.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두었다.
문왕은 상경으로 도읍을 옮겼고, 동경 용원부에서 신라 정천군(덕원)으로 이어지는 신라도를 통해 신라와도 오갔다. 발해는 상경에서 사방으로 뻗은 신라도·일본도·영주도·거란도·조공도(압록도) 같은 교통로를 두어 주변 나라와 오갔다. 당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당은 산둥반도의 등주에 발해 사신과 상인이 머무는 발해관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