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 대흠무
발해 제3대 왕. 대흥 연호를 쓰고 당과 친선을 맺어 3성 6부의 제도를 갖추었다. 도읍을 상경으로 옮기고 신라도로 신라와 교류했다
대흥·보력 연호를 썼고, 정효 공주 묘지는 그를 "황상"이라 불렀다. 중앙에 정당성·선조성·중대성의 3성과 충·인·의·지·예·신부의 6부를 두었는데,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고 6부에 유교 덕목의 이름을 붙인 것은 발해만의 특징이다.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두었다.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고려 국왕"이라 일컬었고, 762년 당은 발해의 지위를 "발해 군왕"에서 "발해 국왕"으로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