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780년·792년

발해 정혜·정효 공주 묘

문왕의 두 딸 정혜 공주(780년 장례)와 정효 공주(792년 장례)의 무덤. 고구려와 당의 문화를 함께 보여 준다.

돌사자 — 정혜 공주 묘가 있는 둔화 육정산 고분군에서 나온 발해 유물
돌사자 — 정혜 공주 묘가 있는 둔화 육정산 고분군에서 나온 발해 유물

H2v5o68z · CC0 · 원본

정혜 공주 묘(지린성 둔화 육정산 고분군)는 굴식 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을 한 고구려 양식이고, 돌사자상이 나왔다. 정효 공주 묘(지린성 허룽 용두산 고분군)는 당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무덤 위에 탑을 쌓았고 벽에 시종과 악사 12명을 그린 벽화가 있다. 두 무덤의 묘지는 문왕을 "황상"이라 불러 발해가 황제국을 자처했음을 보여 준다.

발해 문화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 문화를 받아들였다. 고구려 양식을 이은 이불병좌상(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불상, 법화 신앙)과 상경의 석등, 온돌, 연꽃무늬 수막새, 치미가 대표적이다.

지도에서 보기

78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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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발해 — 문왕 대흠무

관련 인물

  • 정혜 공주737년 – 777년

    관련자 · 발해 문왕의 둘째 딸. 육정산 고분군의 굴식 돌방무덤에 묻혔다

  • 정효 공주757년 – 792년

    관련자 · 발해 문왕의 넷째 딸. 용두산 고분군의 벽돌무덤에 묻혔고, 무덤 벽에 인물 벽화가 남아 있다

  • 문왕 대흠무793년

    군주 · 발해 제3대 왕. 대흥 연호를 쓰고 당과 친선을 맺어 3성 6부의 제도를 갖추었다. 도읍을 상경으로 옮기고 신라도로 신라와 교류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771년 성덕 대왕 신종 완성
이후 사건
780년 양세법 시행

이 사건이 든 테마

  • 고분의 변천기원전 2000년 – 1374년

    고인돌에서 공민왕릉까지 — 돌무지무덤·돌무지덧널무덤·굴식 돌방무덤·벽돌무덤, 나라와 시대마다 달라진 무덤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