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732년 9월(음력)

장문휴의 등주 공격

발해 무왕이 장문휴에게 수군을 주어 당의 산둥반도 등주를 치게 했다. 발해군은 등주 자사를 죽였다.

펑라이 수성 — 옛 등주 항구 자리에 명나라가 쌓은 수군 기지, 중국 산둥
펑라이 수성 — 옛 등주 항구 자리에 명나라가 쌓은 수군 기지, 중국 산둥

Antigng · CC BY-SA 4.0 · 원본

대조영의 아들 무왕은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동북쪽의 여러 말갈을 복속해 영토를 넓혔다. 흑수말갈이 당과 손을 잡자 무왕은 아우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치게 했으나, 대문예가 반대하다 당으로 달아나면서 당과의 갈등이 깊어졌다.

732년 장문휴가 이끄는 발해 수군이 바다를 건너 등주를 기습했다. 이듬해 당은 신라에 발해의 남쪽을 치게 했지만 신라군은 큰 눈과 추위로 물러났다. 이 일로 당은 735년 신라의 패강(대동강) 이남 영유를 인정했다.

지도에서 보기

73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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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발해 · 침공국 — 무왕 대무예
당 · 피침국 — 현종
신라 · 참전국 — 성덕왕
관련 장소
등주 (펑라이)

관련 인물

  • 무왕 대무예737년

    군주 · 발해 제2대 왕. 인안이라는 연호를 쓰고 영토를 넓혔다.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쳤다

  • 장문휴

    지휘관 · 발해 무왕의 장수. 732년 수군을 이끌고 당의 등주를 공격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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