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1년

한인 애국단

침체에 빠진 임시 정부를 되살리려고 김구가 상하이에서 한인 애국단을 조직해 의열 투쟁을 벌였다.

한인 애국단 선서문을 가슴에 단 윤봉길 — 1932년 4월 26일
한인 애국단 선서문을 가슴에 단 윤봉길 —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 본부(안공근 집) 상하이시 황푸구 황푸난루 863에서 · Public domain · 원본

국민 대표 회의 뒤 임시 정부는 사람과 돈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1931년 만보산 사건으로 한중 두 민족 사이가 나빠지고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자, 김구는 일제의 요인을 처단해 독립 의지를 알리려고 한인 애국단을 만들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한국 독립운동이 세계에 알려지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지원하게 되었다. 중국 뤄양 군관 학교에 한인 특별반이 설치되어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 한편 일제의 추적을 피해 임시 정부는 1932년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았다.

지도에서 보기

193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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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중화민국
관련 장소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관련 인물

  • 김구1876년 – 1949년

    주도자 ·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하위 사건 2건

  1. 1

    한인 애국단원 이봉창이 도쿄 사쿠라다몬 앞에서 일왕이 탄 마차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일왕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2. 2

    한인 애국단원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일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승리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죽이고 다치게 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31년 만주 사변

관련 작품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45회 「조선인 이봉창은 어떻게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나?」방송 · 2023 · 조건 · tvN STORY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