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애국단
침체에 빠진 임시 정부를 되살리려고 김구가 상하이에서 한인 애국단을 조직해 의열 투쟁을 벌였다.

한인애국단 본부(안공근 집) 상하이시 황푸구 황푸난루 863에서 · Public domain · 원본
국민 대표 회의 뒤 임시 정부는 사람과 돈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1931년 만보산 사건으로 한중 두 민족 사이가 나빠지고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자, 김구는 일제의 요인을 처단해 독립 의지를 알리려고 한인 애국단을 만들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한국 독립운동이 세계에 알려지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지원하게 되었다. 중국 뤄양 군관 학교에 한인 특별반이 설치되어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 한편 일제의 추적을 피해 임시 정부는 1932년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