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한인 애국단원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일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승리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죽이고 다치게 했다.

의거 직후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윤봉길 —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직후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윤봉길 —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32년 4월 29일 기념식 단상에 던진 폭탄으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이 죽고, 여러 고관이 크게 다쳤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붙잡혀 그해 12월 일본 가나자와에서 사형되었다.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이 의거를 계기로 중국 정부가 임시 정부를 적극 지원하게 되었고, 뒷날 한국광복군 창설의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3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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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피해국 — 쇼와 일왕
중화민국
관련 장소
훙커우 공원

관련 인물

  • 윤봉길1908년 – 1932년

    주도자 · 한인 애국단원.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가나자와에서 순국했다

  • 김구1876년 – 1949년

    관련자 ·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2년 이봉창 의거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