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한인 애국단원.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가나자와에서 순국했다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무렵부터 고향에서 야학을 열고 『농민독본』을 지어 가르치며, 월진회를 만들어 농촌을 일으키는 운동을 폈다. 1930년 "장부가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는 글을 남기고 망명해, 칭다오를 거쳐 상하이에 닿았다.
상하이에서 채소 장사 등을 하며 지내다 김구를 찾아가 한인 애국단에 들어갔다.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천장절)과 상하이 사변 승리 기념식장에 물통 모양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을 죽이고 여러 고위 인사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이 의거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적극 돕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고, 1932년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총살되었다. 광복 뒤 1946년 유해가 돌아와 서울 효창공원에 묻혔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