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5년 7월 – 1916년 3월

후세인·맥마흔 서한

다른 이름: 맥마흔 선언, 후세인–맥마흔 협정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이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하면 전쟁 뒤 아랍인의 독립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맥마흔이 후세인에게 아랍 독립 지지를 밝힌 편지 — 1915년 10월 24일
맥마흔이 후세인에게 아랍 독립 지지를 밝힌 편지 — 1915년 10월 24일

The British Government · CC0 · 원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에 서자, 영국은 수에즈 운하와 인도로 가는 길을 지키려고 오스만 지배 아래의 아랍인을 끌어들이려 했다. 1915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슬람 성지 메카의 태수 후세인 빈 알리와 카이로의 영국 고등 판무관 헨리 맥마흔이 열 통 남짓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1915년 10월 24일 맥마흔의 편지는 몇몇 지역을 빼고 아랍인의 독립을 인정하고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을 믿고 후세인은 1916년 아랍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국은 거의 같은 때 프랑스와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고, 이듬해에는 유대인에게 밸푸어 선언을 내놓았다. 이를 영국의 "이중(삼중) 외교"라 부른다. 특히 서한이 말한 "다마스쿠스·홈스·하마·알레포 서쪽 지역"에 팔레스타인이 들어가는지를 두고, 영국은 처음부터 빠져 있었다고 하고 아랍 쪽은 약속된 땅이었다고 맞섰다. 이 엇갈린 해석은 뒷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한 뿌리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15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영국
오스만 제국
관련 장소
카이로, 메카

관련 인물

  • 헨리 맥마흔1862년 – 1949년

    외교관 · 영국의 외교관·식민지 관리. 이집트 고등 판무관(1915–1916)으로 메카의 후세인과 서한을 주고받았다

  • 후세인 빈 알리1854년 – 1931년

    외교관 · 메카의 샤리프(태수). 영국과 서한을 주고받은 뒤 1916년 아랍 반란을 일으키고 헤자즈 왕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건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

이 사건이 든 테마

  •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 운동1915년 – 1948년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