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군영 체제 완성
숙종이 금위영을 두어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수어청과 함께 5군영 체제가 갖추어졌다.
임진왜란 중 설치된 훈련도감에 이어, 인조 때 안팎의 위기에 따라 군영이 차례로 생겼다. 인조반정 직후 어영청(1623)을 두었고, 이괄의 난(1624) 뒤 경기 일대를 지키는 총융청을, 1626년 남한산성을 고쳐 쌓고 이를 지키는 수어청을 두었다. 어영청은 효종 때 북벌의 중심 부대로 커졌다. 1682년 숙종이 도성을 지키는 금위영을 설치해 5군영이 갖추어졌다.
5군영은 계획에 따라 한꺼번에 만든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생겼다. 훈련도감은 급료병, 어영청·금위영은 지방에서 번갈아 올라오는 번상병이 중심이었고, 총융청·수어청은 경기의 속오군으로 꾸렸다. 군영은 붕당의 군사 기반이 되어 집권 세력이 장악하려 다투었고, 정조는 장용영(1793)을 두어 이를 견제했다.
같은 시기 삼포왜란 때 임시로 생겨 을묘왜변(1555) 뒤 상설 기구가 된 비변사가 전쟁을 거치며 군사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다루는 최고 기구가 되었다. 그만큼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은 약해졌고, 비변사는 흥선 대원군이 의정부에 합칠 때까지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