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국공 합작
다른 이름: 국공 합작, 연소·용공·부조농공, 황푸 군관 학교 설립
1924년 쑨원의 국민당이 "연소·용공·부조농공"을 내걸고 공산당원의 개인 입당을 받아들여 공산당과 손잡고, 황푸 군관 학교를 세워 군벌 타도를 준비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군벌에 밀려 광저우에서 거듭 어려움을 겪은 쑨원은 서양 열강 대신 소련의 도움을 구했다. 1923년 소련 대표 요페와 공동 선언을 내고, 1924년 1월 광저우에서 국민당 제1차 전국 대표 대회를 열어 소련과 손잡고(연소) 공산당을 받아들이며(용공) 농민·노동자를 돕는다(부조농공)는 방침을 정했다. 공산당원은 당적을 지닌 채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들어갔고, 쑨원은 삼민주의를 반제국주의·반군벌 쪽으로 새로 풀이했다.
같은 해 6월 소련의 자금과 고문으로 황푸 군관 학교가 문을 열었다. 장제스가 교장, 저우언라이가 정치부를 맡았고, 의열단원 등 한국 청년들도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25년 쑨원이 "혁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뒤에도 합작은 북벌까지 이어졌으나, 1927년 장제스의 반공 쿠데타로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