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의 쇄국과 데지마
다른 이름: 쇄국, 쇄국 정책, 사코쿠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막으려 일본인의 해외 도항을 금하고 1639년 포르투갈 배를 내쫓았으며, 1641년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의 데지마로 옮겨 서양과의 무역을 그곳으로만 묶었다.

Kawahara Keiga · CC BY-SA 4.0 · 원본
에도 막부는 처음에는 해외 도항 허가장(주인장)을 받은 주인선으로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교역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퍼지는 것과 서쪽 다이묘가 무역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경계해, 1630년대에 일본 배의 해외 도항과 해외 일본인의 귀국을 금했다. 시마바라의 난 뒤 1639년 포르투갈 배의 입항을 금하고, 1641년 히라도의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 항구의 인공 섬 데지마로 옮겼다. 뒤에 이 대외 통제를 쇄국이라 불렀다.
그래도 나라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었다. 나가사키에서는 네덜란드·중국 상인과, 쓰시마를 통해서는 조선과, 사쓰마를 통해서는 류큐와, 마쓰마에를 통해서는 아이누와 교류하는 네 개의 창구가 있었다. 네덜란드 상관장은 해외 소식을 담은 풍설서를 막부에 바쳤고, 데지마로 들어온 책과 의학은 18세기 난학의 바탕이 되었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 일행도 데지마로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람이었다. 쇄국은 1854년 미일 화친 조약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