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39년 (포르투갈 배 금지) · 1641년 (데지마)

에도 막부의 쇄국과 데지마

다른 이름: 쇄국, 쇄국 정책, 사코쿠

에도 막부는 기독교를 막으려 일본인의 해외 도항을 금하고 1639년 포르투갈 배를 내쫓았으며, 1641년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의 데지마로 옮겨 서양과의 무역을 그곳으로만 묶었다.

나가사키만의 데지마 — 부채꼴 섬과 네덜란드 배, 가와하라 게이가의 병풍 (1836년 무렵)
나가사키만의 데지마 — 부채꼴 섬과 네덜란드 배, 가와하라 게이가의 병풍 (1836년 무렵)

Kawahara Keiga · CC BY-SA 4.0 · 원본

에도 막부는 처음에는 해외 도항 허가장(주인장)을 받은 주인선으로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교역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퍼지는 것과 서쪽 다이묘가 무역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경계해, 1630년대에 일본 배의 해외 도항과 해외 일본인의 귀국을 금했다. 시마바라의 난 뒤 1639년 포르투갈 배의 입항을 금하고, 1641년 히라도의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 항구의 인공 섬 데지마로 옮겼다. 뒤에 이 대외 통제를 쇄국이라 불렀다.

그래도 나라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었다. 나가사키에서는 네덜란드·중국 상인과, 쓰시마를 통해서는 조선과, 사쓰마를 통해서는 류큐와, 마쓰마에를 통해서는 아이누와 교류하는 네 개의 창구가 있었다. 네덜란드 상관장은 해외 소식을 담은 풍설서를 막부에 바쳤고, 데지마로 들어온 책과 의학은 18세기 난학의 바탕이 되었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 일행도 데지마로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람이었다. 쇄국은 1854년 미일 화친 조약으로 끝났다.

지도에서 보기

1639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일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관련 장소
데지마, 나가사키

관련 인물

  • 도쿠가와 이에미쓰1604년 – 1651년

    주도자 · 에도 막부의 제3대 쇼군(재위 1623–1651). 산킨코타이를 제도로 만들고 기독교 금지와 쇄국 체제를 완성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37년 시마바라의 난
이후 사건
1678년 초량 왜관 설치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