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회의와 아프리카 분할
다른 이름: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의, 콩고 회의, 아프리카 쟁탈전
열강이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분할의 규칙을 정했다. 이후 30년 사이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뺀 아프리카 전체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은 아프리카의 해안에만 거점을 두었으나, 리빙스턴·스탠리의 탐험으로 내륙이 알려지고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 분지를 차지하려 하자 열강의 다툼이 커졌다. 비스마르크는 1884년 11월 15일부터 1885년 2월 26일까지 베를린에 유럽 열강과 미국 등 14개 나라 대표를 불러 회의를 열었다. 아프리카인은 한 사람도 초대되지 않았다.
회의는 콩고강·니제르강의 자유 항행과 콩고 분지의 자유 무역을 정하고,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자유국을 인정했다. 또 해안을 새로 차지하려면 다른 나라에 알리고 실제로 지배해야 한다는 "실효적 점유"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열강이 앞다투어 내륙을 점령하는 "아프리카 쟁탈전"을 불렀다.
영국은 카이로와 케이프타운을 잇는 종단 정책, 프랑스는 알제리·사하라에서 마다가스카르까지 잇는 횡단 정책을 폈고, 독일·이탈리아·포르투갈·벨기에도 뛰어들었다. 국경은 민족·부족의 경계와 상관없이 지도 위에 곧은 선으로 그어졌고, 이것이 독립 뒤 아프리카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콩고 자유국에서는 고무 수탈로 많은 사람이 죽어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1908년 벨기에 정부가 넘겨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