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남북 정부 수립에서 정전까지 — 남침, 인천 상륙, 중국군 참전, 1·4 후퇴와 정전 협정

Maj. R.V. Spencer, UAF (Navy). U.S. Army Korea - Installation Management Command. · Public domain · 원본
남북 정부 수립에서 정전까지 — 남침, 인천 상륙, 중국군 참전, 1·4 후퇴와 정전 협정

Maj. R.V. Spencer, UAF (Navy). U.S. Army Korea - Installation Management Command. · Public domain · 원본
5·10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가 헌법을 만들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위 38도선 이북에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국 국무 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그 밖에 두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그어졌다.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남쪽으로 쳐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까지 내려왔다.
맥아더가 지휘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고 전세를 뒤집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고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한 뒤 압록강까지 나아갔다.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쟁에 뛰어들자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남쪽으로 물러났다. 동부 전선의 군과 피란민은 흥남에서 배로 철수했다.
중국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내주고 물러났다. 1951년 3월 서울을 되찾은 뒤 전선은 38도선 부근에서 굳었다.
2년 넘는 회담 끝에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맺어져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가 정해졌다.
정전 뒤 한국과 미국이 상호 방위 조약을 맺어 미군이 한국에 머무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1948–1994).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수상·주석이 되었다. 6·25 전쟁 뒤 반대파를 숙청하고 1인 독재 체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