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한국 전쟁)

다른 이름: 한국전쟁, 한국 동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그어졌다.

동생을 업고 멈춰 선 전차 곁을 지나는 소녀 — 행주, 1951년 6월 9일
동생을 업고 멈춰 선 전차 곁을 지나는 소녀 — 행주, 1951년 6월 9일

Maj. R.V. Spencer, UAF (Navy). U.S. Army Korea - Installation Management Command. · Public domain · 원본

냉전 속에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선 뒤, 1950년 1월 미국이 애치슨 선언으로 한반도를 태평양 방위선에서 뺐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북한은 6월 25일 남침해(북한의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국군을 낙동강까지 밀어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북한의 침략을 규정하고 유엔군을 보냈으며, 16개국이 전투 부대를 보냈다.

9월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혀 서울 수복과 북진이 이어졌으나, 10월 중국군 참전으로 다시 밀려 1·4 후퇴를 겪었다. 1951년 봄부터 전선이 38도선 부근에서 굳자 7월 정전 회담이 시작되었고, 고지를 둘러싼 싸움이 2년 동안 이어진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이산가족과 전쟁고아가 생겼으며, 국토와 산업 시설이 크게 파괴되었다. 남한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었고, 남북 모두 반공·반미를 내세워 독재 체제를 굳혔다.

지도에서 보기

1950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민국 · 교전국 — 대통령 이승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교전국 — 최고 지도자 김일성
미국 · 유엔군 — 대통령 해리 트루먼
중화인민공화국 · 참전국 —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

하위 사건 6건

  1. 1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남쪽으로 쳐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까지 내려왔다.

  2. 2

    맥아더가 지휘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고 전세를 뒤집었다.

  3. 3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고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한 뒤 압록강까지 나아갔다.

  4. 4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쟁에 뛰어들자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남쪽으로 물러났다. 동부 전선의 군과 피란민은 흥남에서 배로 철수했다.

  5. 5

    중국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내주고 물러났다. 1951년 3월 서울을 되찾은 뒤 전선은 38도선 부근에서 굳었다.

  6. 6

    2년 넘는 회담 끝에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맺어져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가 정해졌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50년 애치슨 선언
이후 사건
1952년 발췌 개헌

관련 작품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냉전1945년 – 1991년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