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51년 1월 4일

1·4 후퇴

중국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내주고 물러났다. 1951년 3월 서울을 되찾은 뒤 전선은 38도선 부근에서 굳었다.

눈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란민 행렬 — 강릉 부근, 1951년 1월 8일
눈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란민 행렬 — 강릉 부근, 1951년 1월 8일

Cpl. Walter Calmus. (Army) · Public domain · 원본

1951년 1월 4일 중국군과 북한군의 공세로 정부와 국군·유엔군이 다시 서울에서 물러났다. 많은 피란민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에 나서 1951년 3월 서울을 되찾았다. 이후 전선은 38도선 부근에서 오르내렸고, 1951년 7월 정전 회담이 시작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5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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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민국 · 교전국 — 대통령 이승만
미국 · 유엔군 — 대통령 해리 트루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교전국 — 최고 지도자 김일성
중화인민공화국 · 참전국 —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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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중국군 참전
이후 사건
1953년 정전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