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회의
다른 이름: 워싱턴 군축 회의, 태평양 회의
미국의 초청으로 열강이 워싱턴에 모여 해군 군비를 줄이고 태평양·중국 문제를 정리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의 팽창을 묶어 두는 워싱턴 체제가 섰다.

Harris & Ewing,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제1차 세계 대전 뒤 미국·영국·일본은 앞다투어 군함을 늘렸고, 태평양과 중국을 둘러싼 미·일의 경쟁도 날카로워졌다. 미국 하딩 정부의 초청으로 1921년 11월 12일 9개 나라 대표가 워싱턴에 모였다. 국제 연맹에 들지 않은 미국이 전후 질서를 이끄는 자리에 선 것이다.
4개국 조약으로 태평양 섬들의 현상 유지를 약속하면서 영·일 동맹이 끝났다. 5개국 해군 군축 조약은 미·영·일·프·이의 주력함 비율을 5 : 5 : 3 : 1.75 : 1.75로 묶었고, 9개국 조약은 중국의 영토 보전과 문호 개방을 확인했다. 일본은 산둥의 옛 독일 이권을 중국에 돌려주었다.
이로써 유럽의 베르사유 체제와 짝을 이루는 워싱턴 체제가 섰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승만·서재필 등을 보내 독립을 호소했으나 회의는 한국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이 실망은 국민 대표 회의(1923)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