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81년 9월 9일 – 1882년 9월 13일
우라비 혁명과 영국의 이집트 점령
다른 이름: 아라비 파샤의 반란, 오라비 혁명
군인 우라비가 "이집트인을 위한 이집트"를 내걸고 외세의 간섭과 헤디브에 맞섰으나, 영국군에 진압되었다. 이집트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Ahmed yousri elmamlouk · CC BY-SA 4.0 · 원본
수에즈 운하 건설과 근대화 사업으로 빚더미에 오른 이집트는 1876년부터 영국·프랑스의 재정 관리를 받았다. 유럽인 관리가 정부를 좌우하고 이집트인 장교가 차별받자, 1881년 9월 9일 아흐마드 우라비가 군대를 이끌고 카이로의 아브딘 궁전 앞에서 헤디브 타우피크에게 내각 교체·헌법·의회를 요구했다. 이듬해 그는 국방 장관이 되었다.
운하와 채권을 지키려던 영국은 1882년 7월 11일 알렉산드리아를 포격하고 상륙해, 9월 13일 텔엘케비르 전투에서 우라비군을 물리쳤다. 우라비는 실론으로 유배되었고, 이집트는 형식상 오스만 제국에 속한 채 사실상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정식 보호국 1914). 우라비 혁명은 이집트 민족 운동의 시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