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3월 – 1922년 2월 28일 (독립 선언)

이집트의 1919년 혁명과 독립

다른 이름: 이집트 혁명 (1919)

사드 자글룰이 이끈 와프드(대표단)의 지도자들이 유배되자 이집트 전국에서 반영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은 1922년 이집트의 독립을 인정했으나 군대 주둔 등 특권을 남겼다.

카이로에서 시위하는 민족주의자들 — 1919년 3월
카이로에서 시위하는 민족주의자들 — 1919년 3월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영국은 1882년부터 이집트를 점령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1914년 보호국으로 삼았다. 전쟁이 끝나자 사드 자글룰 등은 와프드(대표단)를 꾸려 파리 강화 회의에 이집트의 독립을 호소하려 했다. 영국이 1919년 3월 이들을 체포해 몰타로 유배하자, 학생·노동자·농민이 들고일어나 시위와 파업이 전국으로 번졌다. 이슬람교도와 콥트 기독교도가 함께 나섰고 여성들도 거리에서 시위했다.

영국은 자글룰을 풀어 주고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1922년 2월 28일 일방적으로 이집트의 독립을 선언했다. 술탄 푸아드 1세가 국왕이 되고 1923년 헌법이 만들어졌으며, 이듬해 선거에서 와프드당이 이겨 자글룰이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수에즈 운하의 안전, 국방, 외국인 보호, 수단 문제를 계속 쥐고 군대를 남겨, 완전한 독립은 이후의 과제로 남았다. 같은 해 한국의 3·1 운동, 중국의 5·4 운동과 함께 전후 민족 운동의 물결을 보여 준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영국 보호국 이집트 · 해체
이집트 · 독립
영국 · 통치국
관련 장소
카이로

관련 인물

  • 사드 자글룰1859년 – 1927년

    주도자 · 이집트 민족 운동의 지도자. 와프드당을 이끌고 1919년 혁명의 중심이 되었으며, 1924년 총리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43년 카이로 선언

이 사건이 든 테마

  •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 운동1915년 – 1948년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