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19년 5월 19일 – 1923년 7월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다른 이름: 터키 독립 전쟁, 국민 투쟁,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진 오스만 제국이 연합국에 분할될 위기에 놓이자, 무스타파 케말이 앙카라를 거점으로 저항해 그리스군을 몰아내고 세브르 조약을 무너뜨렸다.

앙카라에서 열린 대국민 의회 개원 —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서 열린 대국민 의회 개원 — 1920년 4월 23일

Image from www.arastiralim.net · CC BY-SA 3.0 · 원본

패전한 오스만 제국은 1918년 휴전 뒤 연합국에 이스탄불을 점령당했고, 1919년 5월 15일에는 그리스군이 이즈미르에 상륙했다. 나흘 뒤 흑해의 삼순에 내린 무스타파 케말은 아나톨리아 곳곳의 저항 세력을 모아 국민 협약으로 튀르크인이 사는 땅은 나눌 수 없다고 선언하고,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서 대국민 의회를 열었다. 술탄 정부는 1920년 8월 세브르 조약에 서명했는데, 이 조약은 아나톨리아의 많은 부분을 그리스·아르메니아·쿠르드와 열강의 세력권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앙카라 정부는 조약을 거부하고 싸웠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손잡아 동쪽 국경을 안정시킨 뒤 1921년 사카리아 전투에서 그리스군의 진격을 막았다. 1922년 8월 대공세로 그리스군을 무너뜨리고 9월 이즈미르를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양쪽의 민간인 학살과 이즈미르 대화재 같은 비극이 일어났다. 10월 무단야 휴전이 맺어졌고, 11월 대국민 의회는 술탄제를 폐지해 600년 넘게 이어진 오스만 제국이 끝났다.

전쟁의 승리로 튀르키예는 1923년 로잔 조약에서 세브르 조약을 뒤집고 오늘의 국경을 인정받았으며, 그해 공화국을 세웠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무력으로 강화 조약을 고친 거의 유일한 예로, 다른 아시아 민족 운동에도 큰 자극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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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오스만 제국 · 멸망
그리스 · 교전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관련 장소
앙카라

관련 인물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년 – 1938년

    지휘관 · 튀르키예 독립 전쟁을 이끌고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 정교분리·문자 개혁 등 근대화 개혁을 밀어붙였다

하위 사건 1건

  1. 튀르키예와 연합국이 스위스 로잔에서 맺은 강화 조약. 세브르 조약을 대신해 오늘의 튀르키예 국경을 정하고 불평등한 특권(카피툴레이션)을 없앴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5년 아르메니아인 학살

이 사건이 든 테마

  •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 운동1915년 – 1948년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