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

튀르키예와 연합국이 스위스 로잔에서 맺은 강화 조약. 세브르 조약을 대신해 오늘의 튀르키예 국경을 정하고 불평등한 특권(카피툴레이션)을 없앴다.

로잔 회의의 튀르키예 대표단 —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스메트 파샤, 1923년
로잔 회의의 튀르키예 대표단 —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스메트 파샤, 1923년

Frank-Henri Jullien · Public domain · 원본

독립 전쟁에서 이긴 앙카라 정부는 이스메트 파샤를 대표로 보내 1922년 11월부터 영국·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등과 협상했고, 1923년 7월 24일 조약에 서명했다.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가 튀르키예 땅으로 인정되었고, 외국인에게 치외 법권 등을 주던 카피툴레이션이 없어졌다. 해협은 비무장 지대로 국제 위원회가 관리하게 되었다(1936년 몽트뢰 협약으로 튀르키예가 되찾았다).

조약에 앞서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주민 교환에 합의해, 튀르키예의 정교회 신자 100만여 명과 그리스의 이슬람교도 40만 명가량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세브르 조약이 약속했던 아르메니아와 쿠르드의 나라는 사라졌다. 로잔 조약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강화 조약 가운데 패전국이 대등하게 협상한 거의 유일한 조약이다.

지도에서 보기

192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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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튀르키예 · 체결국
영국 · 체결국
프랑스 · 체결국
이탈리아 · 체결국
그리스 · 체결국

관련 인물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년 – 1938년

    관련자 · 튀르키예 독립 전쟁을 이끌고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 정교분리·문자 개혁 등 근대화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 운동1915년 – 1948년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