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20 – 1566년

술레이만 1세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다른 이름: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밀레트 제도, 프레베자 해전

술레이만 1세 때 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 되었다. 법을 정비해 "입법자"라 불렸고, 다른 종교 공동체의 자치를 인정해 여러 민족을 아울렀다.

이스탄불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 술레이만 1세의 명으로 건축가 시난이 1550–1557년에 지었다
이스탄불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 술레이만 1세의 명으로 건축가 시난이 1550–1557년에 지었다

Arild Vågen · CC BY-SA 3.0 · 원본

1520년 즉위한 술레이만 1세는 46년 동안 다스리며 헝가리를 차지하고 빈을 포위했으며(1529), 동쪽으로는 사파비 왕조에게서 바그다드를 빼앗았다(1534). 해군 제독 하이레딘 바르바로스는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 에스파냐·베네치아 등의 연합 함대를 무찔러 지중해를 장악했다. 술레이만은 프랑스와 손잡고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섰다.

제국은 술탄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중앙 집권 체제였다. 크리스트교도 소년을 뽑아 개종시키고 훈련한 데브시르메 제도로 술탄의 상비군 예니체리와 관료를 길렀고, 기병에게는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권리(티마르)를 주었다. 술레이만은 이슬람법(샤리아)과 함께 술탄의 법령(카눈)을 정비해 "입법자(카누니)"라 불렸다. 그리스 정교도·아르메니아 교도·유대교도는 세금(지즈야)을 내면 종교 공동체(밀레트)를 이루어 자기 지도자 아래 신앙과 관습을 지킬 수 있었다.

수도 이스탄불은 동서 교역의 중심으로 번영했고, 건축가 시난은 쉴레이마니예 모스크(1550–1557)를 지었다. 술레이만이 1566년 헝가리 원정 중에 죽은 뒤 오스만 해군은 레판토 해전(1571)에서 졌으나, 제국은 17세기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다. 같은 때 조선은 중종·명종 대로, 사림이 사화를 겪고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152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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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오스만 제국
관련 장소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빈

관련 인물

  • 술레이만 1세1494년 – 1566년

    군주 · 오스만 제국의 술탄(재위 1520–1566). 헝가리를 꺾고 빈을 포위했으며 지중해를 장악해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입법자"라 불린다

  • 시난1588년

    관련자 · 오스만 제국의 궁정 건축가(1490년 무렵–1588).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셀리미예 모스크 등 수백 채의 건물을 지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526년 모하치 전투와 빈 포위

이 사건이 든 테마

  • 이슬람 제국의 번영과 대서양 세계1500년 – 1800년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