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레이만 1세와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다른 이름: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밀레트 제도, 프레베자 해전
술레이만 1세 때 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 되었다. 법을 정비해 "입법자"라 불렸고, 다른 종교 공동체의 자치를 인정해 여러 민족을 아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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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 즉위한 술레이만 1세는 46년 동안 다스리며 헝가리를 차지하고 빈을 포위했으며(1529), 동쪽으로는 사파비 왕조에게서 바그다드를 빼앗았다(1534). 해군 제독 하이레딘 바르바로스는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 에스파냐·베네치아 등의 연합 함대를 무찔러 지중해를 장악했다. 술레이만은 프랑스와 손잡고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섰다.
제국은 술탄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중앙 집권 체제였다. 크리스트교도 소년을 뽑아 개종시키고 훈련한 데브시르메 제도로 술탄의 상비군 예니체리와 관료를 길렀고, 기병에게는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권리(티마르)를 주었다. 술레이만은 이슬람법(샤리아)과 함께 술탄의 법령(카눈)을 정비해 "입법자(카누니)"라 불렸다. 그리스 정교도·아르메니아 교도·유대교도는 세금(지즈야)을 내면 종교 공동체(밀레트)를 이루어 자기 지도자 아래 신앙과 관습을 지킬 수 있었다.
수도 이스탄불은 동서 교역의 중심으로 번영했고, 건축가 시난은 쉴레이마니예 모스크(1550–1557)를 지었다. 술레이만이 1566년 헝가리 원정 중에 죽은 뒤 오스만 해군은 레판토 해전(1571)에서 졌으나, 제국은 17세기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다. 같은 때 조선은 중종·명종 대로, 사림이 사화를 겪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