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노예 무역과 삼각 무역
다른 이름: 노예 무역, 삼각 무역, 중간 항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상인들이 아프리카 사람 1,200만 명 넘게를 노예로 사서 아메리카로 실어 날랐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이 이루어졌다.

Printed by James Phillips, George Yard, Lombard Street, London · Public domain · 원본
아메리카 원주민이 전염병과 가혹한 노동으로 크게 줄자, 유럽인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을 데려왔다. 1518년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를 곧장 실어 나르는 것을 허가했고,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에 많은 노예를 보냈다. 17세기부터는 네덜란드·영국·프랑스가 뛰어들었고, 18세기에는 영국이 가장 많이 실어 날랐다. 서아프리카 해안의 왕국들은 전쟁 포로 등을 총·직물과 바꾸어 넘겼다.
유럽의 배는 총·직물·술을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노예와 바꾸고, 노예를 아메리카에 팔아 설탕·담배·면화를 싣고 돌아왔다. 이를 삼각 무역이라 한다. 노예들은 좁은 배 밑에 쇠사슬로 묶인 채 두 달 가까이 대서양을 건넜고(중간 항로), 그 사이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배에 실린 사람은 약 1,250만 명, 살아서 아메리카에 닿은 사람은 약 1,070만 명으로 추산된다.
삼각 무역으로 쌓인 부는 영국의 산업 혁명에 밑천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아프리카는 젊은 인구를 잃고 노예 사냥 전쟁에 시달렸고, 아메리카에는 아프리카계 사회와 인종 차별이 뿌리내렸다. 18세기 말 계몽사상과 종교인의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어나 영국은 1807년 노예 무역을, 1833년 노예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1865년, 브라질은 1888년에 노예제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