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228년 – 1229년 2월 18일

제6차 십자군

파문당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싸우지 않고 이집트 술탄 알카밀과 협상해 예루살렘을 10년 기한으로 넘겨받았다.

야파 조약을 맺는 프리드리히 2세(왼쪽)와 술탄 알카밀 — 조반니 빌라니 『연대기』 사본 삽화, 14세기, 바티칸 도서관
야파 조약을 맺는 프리드리히 2세(왼쪽)와 술탄 알카밀 — 조반니 빌라니 『연대기』 사본 삽화, 14세기, 바티칸 도서관

Giovanni Villani , Chronica, 14. Jahrhundert,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Rom Cod. Chigi L VIII 296, fol. 75r. · Public domain · 원본

프리드리히 2세는 원정을 미루다 교황에게 파문당한 채 1228년 아크레에 왔다. 아랍어를 알고 이슬람 문화에 밝았던 그는 시리아의 친족과 다투던 알카밀과 1229년 2월 야파에서 조약을 맺었다. 예루살렘·베들레헴·나사렛을 돌려받되 성전산(하람 알샤리프)의 이슬람 성소는 무슬림이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묘 교회에서 스스로 왕관을 썼다. 양쪽 모두에서 비난을 받았고, 예루살렘은 1244년 호라즘 군대에게 약탈당한 뒤 다시는 십자군 손에 돌아오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122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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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신성 로마 제국
아이유브 왕조
예루살렘 왕국
관련 장소
예루살렘

관련 인물

  • 프리드리히 2세1194년 – 1250년

    주도자 · 신성 로마 황제(재위 1220–1250)이자 시칠리아 왕. 파문당한 채 제6차 십자군에 나서 싸우지 않고 협상으로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 알카밀1177년 – 1238년

    외교관 · 아이유브 왕조의 이집트 술탄(재위 1218–1238). 제5차 십자군을 물리치고, 1229년 프리드리히 2세에게 협상으로 예루살렘을 넘겼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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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년 제3차 십자군
이후 사건
1325년 이븐 바투타의 여행

이 사건이 든 테마

  • 십자군 전쟁1095년 – 1291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아크레 함락까지 — 성지를 두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200년 동안 맞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