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317 – 589

위진 남북조의 문벌 귀족 문화

다른 이름: 육조 문화, 귀족 문화

분열이 이어진 위진 남북조 시대에 9품중정제로 관직을 대물림한 문벌 귀족이 사회를 이끌며, 청담과 도교·불교, 서예·회화·시문의 귀족 문화를 꽃피웠다.

고개지의 「여사잠도」(뒤 시대의 모사본) 한 장면 — 영국 박물관
고개지의 「여사잠도」(뒤 시대의 모사본) 한 장면 — 영국 박물관

Gu Kaizhi (c.345-c.406) · Public domain · 원본

위(魏)가 220년 실시한 9품중정제는 지방의 중정관이 인물을 9등급으로 평가해 관리를 추천하는 제도였으나, 곧 유력한 집안이 높은 관직을 대물림하는 길이 되어 "상품에 한미한 집안이 없고 하품에 권세 있는 집안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서진이 무너지고 317년 강남에 동진이 서자 북쪽의 귀족들이 대거 내려왔고, 이어 송·제·양·진의 남조가 건강(오늘 난징)에 도읍하며 강남이 크게 개발되었다.

정치 대신 노장 사상을 논하는 청담이 귀족 사이에 유행했고,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왕희지의 서예 「난정서」, 고개지의 그림 「여사잠도」, 양의 소명태자가 엮은 『문선』과 화려한 사륙변려체가 나왔다. 불교는 구마라습의 경전 번역으로 널리 퍼졌고, 도교도 이 시대에 교단을 갖추었다.

고구려·백제는 남조와도 활발히 오갔다. 백제 무령왕릉이 양(梁)의 벽돌무덤 양식을 따른 것이 대표적이다. 문벌 귀족은 수·당 때도 힘을 이어 가다가 당 말·5대의 혼란 속에 무너졌다.

지도에서 보기

317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동진
양 (남조)
관련 장소
난징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수·당과 동아시아 문화권317년 – 979년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