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바이로이트 초연
다른 이름: 니벨룽의 반지, 니벨룽겐의 반지, 반지 4부작, 제1회 바이로이트 축제, 신들의 황혼
1876년 8월 13 – 17일 독일 바이로이트의 새 축제 극장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가 처음 전곡으로 올랐다. 북유럽 신화와 『볼숭 사가』, 독일의 『니벨룽의 노래』를 엮은 이 작품은 근대 유럽이 북유럽 신화를 떠올리는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El Grafo · CC BY-SA 4.0 · 원본
바그너는 1848년 무렵부터 26년에 걸쳐 『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의 4부작을 지었다. 줄거리는 『시의 에다』와 『볼숭 사가』, 스노리의 『산문 에다』, 중세 독일의 『니벨룽의 노래』를 엮은 것으로,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오딘)과 저주받은 반지, 영웅 지크프리트(시구르드)와 발퀴레 브륀힐데의 이야기가 신들의 몰락(라그나로크)으로 끝난다. 앞의 두 편은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의 명으로 1869·1870년 뮌헨에서 먼저 따로 공연되었다.
바그너는 자기 작품만을 위한 극장을 바이에른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에 세우고, 1876년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첫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4부작을 처음 이어서 올렸다.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와 루트비히 2세, 리스트·차이콥스키 등이 보러 왔다. 무대 의상은 화가 카를 에밀 되플러가 맡았는데, 뿔 달린 투구를 쓴 바이킹의 모습이 이 무렵부터 널리 퍼졌다(실제 바이킹 투구에 뿔이 달렸다는 증거는 없다).
첫 축제는 큰 빚을 남겨 두 번째 축제는 1882년에야 열렸다. 『신들의 황혼』이라는 제목은 라그나로크를 「신들의 황혼」으로 옮긴 데서 왔다. 『반지』는 이후 북유럽 신화를 다룬 수많은 그림·소설·영화에 영향을 주었지만,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와 나치 독일이 그의 음악을 내세운 일 때문에 지금도 논란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