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원전 9 – 8세기 무렵 (오두막 자리는 기원전 8세기 무렵)

팔라티노 언덕의 초기 정착지

다른 이름: 로물루스의 오두막, 카사 로물리, 팔라티노의 오두막

테베레강 가의 팔라티노 언덕에 기원전 9 – 8세기 무렵 철기 시대 라틴인의 오두막 마을이 있었다. 언덕 남서쪽 바위에 오두막의 기둥 구멍이 남아 있고, 로마인은 이곳에 「로물루스의 오두막」을 고쳐 가며 지켰다.

팔라티노 언덕 남서쪽 바위에 남은 철기 시대 오두막의 기둥 구멍
팔라티노 언덕 남서쪽 바위에 남은 철기 시대 오두막의 기둥 구멍

Sailko · CC BY 3.0 · 원본

로마는 테베레강의 섬 곁 얕은 여울, 곧 바닷가의 소금을 내륙으로 나르는 길과 강이 만나는 곳의 언덕들에서 시작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언덕 위에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었고, 언덕 사이 낮은 땅(뒤의 포룸)은 무덤 자리였다. 팔라티노 언덕 남서쪽(옛 이름 게르말루스)의 응회암 바위에는 1907년과 1948년 발굴에서 드러난 기원전 8세기 무렵 오두막의 기둥 구멍이 남아 있다. 가장 잘 남은 집은 가로 약 4.9m, 세로 3.6m의 길쭉한 꼴로, 나무 기둥에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벽을 치고 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같은 시대 무덤에서 나온 오두막 모양의 유골 단지가 그 생김새를 보여 준다.

로마인은 팔라티노 언덕에 「로물루스의 오두막(카사 로물리)」을 두고 불에 타면 옛 모습대로 다시 지어 지켰다.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그 곁에 집을 지어 자신을 제2의 로물루스로 내세웠다. 1980년대 이후 고고학자 안드레아 카란디니는 언덕 북쪽 기슭에서 기원전 8세기 후반의 성벽 흔적을 찾아 로물루스의 성벽과 견주었으나, 그 해석은 논쟁 중이다.

고고학은 로마가 어느 날 한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기보다, 언덕의 마을들이 기원전 8 – 7세기에 차츰 하나로 묶이며 도시가 되었다고 본다. 팔라티노 언덕은 1980년 세계 유산이 된 로마 역사 지구에 속한 고고학 공원이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80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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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팔라티노 언덕, 로마

하위 사건 3건

  1. 로마의 건국 전설로, 리비우스의 『로마사』 1권과 플루타르코스의 『로물루스전』이 전한다. 아물리우스의 명으로 테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팔라티노 언덕 아래 루페르칼 동굴에서 암늑대가 젖을 먹여 살렸고, 목자 파우스툴루스가 데려다 길렀다.

  2. 로마의 건국 전설로, 리비우스의 『로마사』 1권과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이 전한다. 쌍둥이가 새 도시의 자리를 두고 새 점을 쳐 다투었고,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성벽의 고랑을 파자 이를 비웃으며 뛰어넘은 레무스를 죽이고 자기 이름을 딴 로마를 세웠다. 전승의 날짜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다.

  3. 기원전 753년사비니 여인의 납치전설

    로마의 건국 전설로, 리비우스의 『로마사』 1권과 플루타르코스가 전한다. 아내가 없던 로마의 남자들이 축제에 이웃 사비니인을 초대해 그 딸들을 붙잡아 갔고, 이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아내가 된 사비니 여인들이 싸움터에 뛰어들어 말려 끝났다. 두 나라는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기원전 700년 포룸 로마눔의 시작

이 사건이 든 테마

  • 로마 건국 신화기원전 1200년 – 1471년

    불타는 트로이를 빠져나온 아이네이아스에서 디도, 로물루스와 레무스, 사비니 여인, 루크레티아까지 — 로마인이 스스로 내세운 기원을 이야기 순서로 따라가며, 라비니움과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아이네이스』와 『로마사』, 아라 파키스와 카피톨리니의 암늑대상을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