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룸 로마눔의 시작
다른 이름: 포로 로마노, 라피스 니게르, 레기아, 코미티움
팔라티노와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의 낮은 습지는 철기 시대에 무덤 자리였다가, 기원전 8세기 말 – 7세기에 흙을 돋우고 처음 포장해 마을들이 함께 쓰는 광장이 되었다. 기원전 7세기의 레기아, 6세기의 「검은 돌(라피스 니게르)」 비문이 이 시대를 보여 준다.

Nicholas Hartmann · CC BY-SA 4.0 · 원본
팔라티노와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의 골짜기는 테베레강이 넘치면 물에 잠기는 낮은 땅이었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10 – 9세기 무렵의 무덤이 나왔는데, 1902년 고고학자 자코모 보니가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곁에서 발굴한 옛 무덤터(세폴크레토)에서는 오두막 모양의 유골 단지도 나왔다. 기원전 8세기 말에서 7세기에 걸쳐 흙과 돌을 채워 땅을 돋우고 처음 포장하면서, 이 골짜기는 언덕 마을들이 함께 모이는 광장, 포룸 로마눔이 되었다. 첫 포장의 정확한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원전 7세기에는 뒤에 대사제의 집무처가 된 레기아(「왕의 집」)가 처음 세워졌고, 민회가 모이던 코미티움도 갖추어졌다. 1899년 보니는 코미티움에서 검은 대리석으로 덮인 바닥(라피스 니게르) 아래의 옛 성소를 찾았는데, 그 안의 돌기둥에는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옛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고 「왕(RECEI)」으로 읽히는 낱말이 있다. 로마인은 이 검은 돌을 로물루스나 파우스툴루스의 무덤 자리라고 여겼다.
로마인은 레기아·베스타 신전 같은 포룸의 가장 오래된 시설을 누마 같은 전설의 왕들이 세웠다고 믿었다. 고고학은 왕들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하지만, 기원전 7 – 6세기에 로마가 왕이 다스리는 도시로 자랐음은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