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45년 11월 20일 – 1946년 10월 1일

뉘른베르크 재판

다른 이름: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미·영·프·소 네 나라가 세운 국제 군사 재판소가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을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 인도에 반한 죄로 재판했다.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뉘른베르크 재판의 피고인석 — 미 육군 레이 다다리오 사진, 1945–1946년, 미국 국립 문서 기록 관리청
위에서 내려다본 뉘른베르크 재판의 피고인석 — 미 육군 레이 다다리오 사진, 1945–1946년, 미국 국립 문서 기록 관리청

Ray D'Addario · Public domain · 원본

전쟁이 끝난 뒤 네 점령국은 런던 협정(1945년 8월)으로 국제 군사 재판소를 세우고, 나치 전당 대회의 도시였던 뉘른베르크의 법원 청사에서 1945년 11월 20일 재판을 열었다. 괴링·헤스·리벤트로프 등 22명이 평화에 대한 죄(침략 전쟁의 계획과 수행), 전쟁 범죄, 인도에 반한 죄로 법정에 섰다.

1946년 10월 1일 판결에서 12명(궐석 1명 포함)이 사형, 7명이 징역형을 받고 3명은 무죄가 되었다. 괴링은 처형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0명이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어 미국이 의사·법률가·기업가 등을 대상으로 12건의 후속 재판을 열었다. 개인에게 국제법상 책임을 물은 이 재판은 같은 무렵 일본의 전범을 다룬 도쿄 재판과 함께 뒤의 국제 형사 재판의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4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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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대통령 해리 트루먼
영국
프랑스
소련 — 최고 지도자 스탈린
연합국 점령하 독일
관련 장소
뉘른베르크 법원 청사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45년 포츠담 회담
이후 사건
1948년 서독 지역의 화폐 개혁

이 사건이 든 테마

  • 독일의 분단과 통일1945년 – 1990년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