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48년 6월 20일
서독 지역의 화폐 개혁
다른 이름: 1948년 화폐 개혁, 도이치마르크 도입
미·영·프 점령 지역이 망가진 라이히스마르크 대신 도이치마르크를 들였다. 물자가 다시 가게에 나오며 경제가 살아났지만, 소련은 베를린 봉쇄로 맞섰고 독일 분단이 굳어졌다.

Bundesarchiv, Bild 147-0739 / o. Ang. · CC BY-SA 3.0 de · 원본
전쟁 뒤 독일에서는 라이히스마르크가 거의 값을 잃어 담배가 돈 노릇을 하고 암시장이 번졌다. 서방 세 점령국은 1948년 6월 20일 새 화폐 도이치마르크를 들였다. 한 사람에게 처음 40마르크씩 나누어 주고, 옛 돈과 예금은 크게 깎아 바꾸어 주었다. 경제 행정 책임자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같은 때 물가 통제의 상당 부분을 풀었다.
쌓아 두었던 물건이 곧바로 가게에 나왔고, 마셜 계획의 원조와 함께 이른바 "경제 기적"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자기 점령 지역에 따로 화폐를 들이고, 6월 24일 서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베를린 봉쇄). 화폐가 갈라지면서 하나의 독일 경제를 두려던 포츠담 회담의 구상은 사실상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