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창 봉기
다른 이름: 8·1 봉기, 남창 봉기, 건군절
상하이 쿠데타와 국공 합작의 붕괴 뒤인 1927년 8월 1일, 공산당이 이끄는 국민 혁명군 부대 약 2만 명이 장시성 난창에서 봉기했다. 며칠 만에 도시를 내주고 남쪽으로 물러나 흩어졌지만, 공산당이 스스로 군대를 가진 출발점으로 기념된다.

1927년 4월 장제스의 상하이 쿠데타에 이어 7월 우한의 국민당 좌파도 공산당과 갈라서자, 공산당은 무장 봉기로 맞서기로 했다. 저우언라이가 이끄는 전선 위원회 아래 허룽·예팅·주더·류보청 등이 지휘하는 부대가 8월 1일 새벽 난창의 국민당군을 무장 해제하고 도시를 차지했다.
봉기군은 국민당군의 반격을 피해 8월 초 난창을 떠나 광둥으로 내려갔으나, 차오저우·산터우 일대에서 크게 져 흩어졌다. 남은 병력 일부는 주더가 이끌고 1928년 징강산에서 마오쩌둥의 부대와 합쳤다. 같은 해 9월 마오쩌둥이 후난에서 일으킨 추수 봉기도 실패해 공산당은 도시 대신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8월 1일을 인민 해방군의 창건 기념일(건군절)로 삼고 있으며, 군기와 휘장에 "八一"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