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강산 근거지와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
다른 이름: 중앙 소비에트 구역, 장시 소비에트, 징강산 혁명 근거지, 추수 봉기
추수 봉기에 실패한 마오쩌둥이 1927년 징강산에 농촌 근거지를 만들고, 1931년 11월 7일 장시성 루이진에서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국민당군의 다섯 차례 포위 공격 끝에 1934년 근거지를 버리고 대장정에 나섰다.

Zhangzhugang · CC BY-SA 4.0 · 원본
1927년 9월 후난성의 추수 봉기가 실패하자 마오쩌둥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10월 장시·후난 경계의 징강산으로 들어갔다. 1928년 4월 난창 봉기의 잔여 부대를 이끈 주더가 합류해 홍군 제4군("주·마오 홍군")이 되었고, 지주의 땅을 나누는 토지 혁명과 유격전으로 근거지를 넓혔다. 1929년 초 홍군은 징강산을 떠나 장시성 남부와 푸젠성 서부로 옮겨 갔다.
각지의 근거지를 묶어 1931년 11월 7일 루이진의 예핑에서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 임시 중앙 정부가 세워졌고, 마오쩌둥이 중앙 집행 위원회 주석이 되었다. 장제스는 1930년부터 다섯 차례 포위 공격(위초)을 벌였다. 홍군은 앞의 네 차례를 유격전으로 막았으나, 1933년 시작된 다섯째 공격은 토치카를 촘촘히 쌓아 조여 오는 전법이었고, 정면 방어를 고집한 당 지도부와 코민테른 고문 오토 브라운의 작전도 실패했다.
1934년 10월 홍군 주력은 루이진 일대를 버리고 서쪽으로 탈출했다. 이 시기 근거지 안에서는 "AB단" 숙청처럼 당 내부를 겨눈 폭력도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