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와 서학
다른 이름: 서학, 곤여만국전도, 천주실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601년 베이징에 들어가 「곤여만국전도」와 『천주실의』로 서양의 지리·과학과 천주교를 한문으로 알렸다. 이 책과 지도는 사신을 통해 조선에도 전해져 서학이 되었다.

Matteo Ricci · Public domain · 원본
예수회는 종교 개혁에 맞선 가톨릭 개혁 속에서 생겨나 아시아 선교에 나섰다. 이탈리아 사람 마테오 리치는 1582년 마카오에 왔고, 이듬해 광둥의 자오칭에 들어가 중국어와 유교 경전을 익혔다. 처음에는 승려의 옷을 입다가 유학자의 옷으로 바꿔 입었고, 천주교의 신을 유교 경전의 상제와 같은 것으로 풀이하며 조상 제사를 풍습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대부에게 다가갔다.
1601년 베이징에 들어간 리치는 만력제에게 자명종과 서양 그림 등을 바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1602년 펴낸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흔들었고, 1603년 『천주실의』로 천주교 교리를 한문으로 풀었다. 천주교 신자가 된 학자 서광계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학을 『기하원본』(1607)으로 옮겼다.
리치가 1610년 베이징에서 죽은 뒤에도 아담 샬 같은 예수회 선교사가 역법과 대포 기술로 명·청 조정에서 일했다. 아담 샬의 서양식 역법은 청의 시헌력이 되었고 조선도 1653년 이를 받아들였다. 리치의 책과 지도는 베이징에 다녀온 사신을 통해 조선에 들어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소개되고 실학자의 세계관을 넓혔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교황청이 조상 제사를 금하자(전례 논쟁) 청은 천주교를 경계했고, 옹정제는 1724년 포교를 금했다.